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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log

[Book로그] 슬픔의 힘은 강하다. ‘이끼숲’ 천선란

# 만약 네 앞에 아몬드가 있어.
근데 이게 독이 있는 야생 아몬드인지,
독이 없는 아몬드인지 몰라.
그럼 너는 어떡할 거야?
그 아몬드를 먹어볼 거야?


 
이끼숲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메모로부터 출발한 이야기 『천 개의 파랑』(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에서, ‘목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누군가의 슬픔을 상상했던 날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나인』(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까지, 천선란의 이야기는 어떤 바람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에 공명하며, 독자들은 그를 ‘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한 것일 테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 세계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면, ‘구하고 싶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생존 욕구만큼이나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구하려는 의지가 커진 듯하다. 아마 이 마음은 출구 없이 꽉 닫힌 이 세계에 작용하는 압력에 비례하여 더욱 간절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 작품이 이야기의 세계에 존재해온 ‘구원 서사’라기보다, 말 그대로 이야기의 안팎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정말로 구하고 싶다는 작가의 강력한 바람으로 쓰여졌음을 짐작게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존재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결코 눈 돌리지 않는 작가가 우리와 함께 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 이로 인한 안도감과 든든함으로 독자들에게 『이끼숲』을 전한다.
저자
천선란
출판
자이언트북스
출판일
2023.05.02

분야 : 소설

이기적으로 생각해. 너 빼고 이미 다 이기적인데 뭘 걱정하는 거야. (166p)

“살아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은 강해, 그 어느 것 보다.”
숲우듬지 사이로 퍼지는 빛의 파장을 먹고 자라는 이끼가 그렇듯이. (271p)

식물은 죽지 않아, 소마
끊임없이 순환하며 새 모습으로 계속 재탄생해. 하지만 그건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행성의 시스템이야. 모든 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씨앗처럼 뿌린다는 걸, 비록 나는 없더라도 내 삶은 이 행성 전체에 퍼져 다른 생명을 꽃피우게 한다는 걸 잊지 마. (321p)

 
안녕하세요~
여름이 짙어지는 요즘의 하늘은 정말 예쁜 거 같아요~

오늘은 하늘의 구름 한조각조차도 감사하게 만드는 책 한 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천선란 작가님의 신간 [이끼숲]이에요.
 
작년 작가님의 책 중 [천 개의 파랑]을 읽고 작가님의 매력에 퐁당 빠졌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천선란 작가님 책을 읽었어요.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책 표지부터 제목까지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었어요. 

왜 이끼숲일까??
뭔가 이끼 하면 축축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데...
이끼숲이라니... 
의문을 품으며 다운로드를 눌렀어요.

 

 
[이끼숲]을 처음 읽었을 땐 단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연작소설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는 단편인 듯하면서도 장편이었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별개처럼 보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지상의 세계가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인간은 지하세계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요.
지하세계에서 인간은 오로지 지하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존재해요.
철저히 감시받고 정해진 규율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늘 일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끼숲]은 이런 답답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르코, 의주, 유오, 소마, 치유키, 툴가 여섯 친구의 이야기예요.

첫 번째 이야기 [바다눈]
마르코와 은희의 이야기예요.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코는 우연히 벽 넘어 작은 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리게 돼요.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은희... 은희를 통해 마르코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알아가게 돼요.

두 번째 이야기 [우주늪]
의주와 의조,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예요.
의조가 의주에게 보내는 편지로... 의주와 의조는 쌍둥이 자매지만 둘에게는 똑같은 삶이 허락되지 않아요.
의조는 늘 이런 모든 것이 불만이고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의주의 친구 치유키를 만나면서 큰 결심을 하게 돼요.

세 번째 이야기 [이끼숲]
유오와 소마의 이야기예요. 가장 슬프고 긴 이야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유오가 사고로 죽게 돼요. 예기치 못한 사고였고 갑자기 모두의 곁을 떠나게 돼요.
준비된 이별이 아니었고 슬픔을 견뎌내는 건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어요. 각자의 방법으로 슬픔을 달래던 네 친구들은 생전 유오가 가장 하고 싶어 하던 일을 대신 이뤄주기로 해요.


작가님 책은 늘 가벼운 듯하면서도 가볍지 않아요.
[이끼숲]은 더더욱 그랬어요~
술술 읽히면서도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웠고 모두가 바라는 뻔한 결말도 없었어요.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어요.

’ 나무는 복수하기 위해 자살한 거야, 인간들을 몰아낸 거지. 이 행성에서 자신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던 거야. 자신을 찾아오던 새와 다람쥐, 뱀, 그리고 나비와 벌이 더는 오지 않음에 분노를 느낀 거야.‘

어쩌면 먼 미래에 정말로 일어날 일일것 같았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과 푸른 하늘과 별, 초록색의 나무들과 형형색들의 꽃들... 소중한 사람들은 계속 우리 곁에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요.
세상엔 결코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과 환경,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아껴주려고 해요.
그리고 지구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해요.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다는 작가님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이 책으로 인해 조금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 누구도 구하지 못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조금은 무거운 느낌의 책이었지만 마음에 와닿는 문장도 많고 삽화도 몽환적이고... 좋은 책이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천선란 작가님 책은 언제나 따뜻하고 좋거든요~)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지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구한다는 건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막는 것인데 나는,
우리는 언제나 일이 일어난 뒤에야 그곳이 위험했음을,
우리가 위태로웠음을,
세상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안다.
항상 먼저 간 이들이 남은 자들을 구한다.

「이끼숲,  천선란」 작가의 말 中